결혼 이야기는 결혼이 아닌 이혼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닌 '결혼 이야기'라고 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이 이 영화의 스토리라고 볼 수 있다. 그저 이혼의 과정을 담았다고만 하기에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다. 잔잔한 듯 하지만 잔인할 만큼 격렬하고 답답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혼 이야기.
#1 헤어짐에 관하여
헤어짐의 시작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비교적 쿨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두 사람. 함께 일하고 살아온 시간이 긴 만큼 그들은 좋은 친구이자 동료인 것 처럼 보인다. 서로의 장점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서로 노력하고 배려하는 사이.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혼할 만큼의 결격사유도 없어 보인다.
그들은 왜 헤어지려는 걸까. 이혼의 과정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조금씩 알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만든 것인지에 대하여. 묘하게도 그 현실적인 장면들은 모두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는 헤어짐을 통해 결혼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저 겉핥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결혼에 대한 조건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아닌,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
#2 좋은 사람 + 좋은 사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부족함 없는 두 사람이 만나야만 가능한 걸까? 서로 무한 배려와 희생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걸까.
남편 '찰리'는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연극 감독이고 자기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다. 리더십과 배려를 동시에 지닌 완벽주의자 성향을 지녔다. 하지만 아빠 노릇을 즐기기도 할 만큼 아이에게도 신경을 쓰고 집안 정리도 잘하는 편이다. 아내 '니콜'은 한 때 주목받는 스타 배우였지만 결혼 후 찰리의 극단에서 배우를 하며 그를 돕는다. 현명하고 다정한 아내이자 엄마이다.
두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어쩌면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질을 갖춘 사람들 처럼.
하지만, 그들을 헤어짐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따질까. 사랑을 기본 전제로 했을 때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지, 얼마나 돈을 잘 버는 사람인지, 다정하고 배려 깊은 사람인지, 나와 공유할 수 있는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또는 이 모든 것들의 총합이 얼마나 되는지 일수도 있겠다. 결혼은 모순적이게도 이 모든 장점을 단점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내가 그를 선택했던 바로 그 이유가 다시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모험.
자기 일에 열정적인 사람은 상대를 숨 막히게 하기도 하고 때론 독단적이기도 하다.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더 그럴 수도 있다. 지나치게 배려하고 희생하는 사람은 그것들이 속 안에 쌓여있다가 한 번에 터져버린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고 거침없게. 남편의 성공과 아내의 성공이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자기의 성공을 결혼의 성공으로 착각해버리면 뒤쳐진 누군가는 자존감을 잃어간다.
남편 찰리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아내이지만 동시에 그녀에게 엄격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되고 맥아더 상을 수상하게 될 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에 한 발짝 다가가지만, 니콜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함께 이룬 것이지만 함께 이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남편의 뒤에서 그를 응원하는 한 때 잘 나갔던 배우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 보인다.
#3 내 자리
니콜은 자기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찰리는 니콜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언제나 그녀의 의견이나 취향은 교묘하게 무시되었다. 친정이 있는 LA에 살고 싶어 했지만 찰리는 그녀의 생각을 차일피일 미루며 뉴욕에서 자신의 부푼 꿈을 향해 나아갔다.
"니콜이 원하면 상의, 찰리가 원하면 약속인 건가요?"
니콜의 변호사가 법정에서 했던 대사인데. 서로 엇갈려버린 두 사람의 입장을 한 마디로 정리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찰리는 좋은 아빠인 듯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아빠의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에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빠의 자리라는 것을 불안하게 쥐고 있는 찰리는 뒤늦게 남편의 자리를 완벽하게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혼하려는 아내의 결정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찰리는 뒤늦게 진짜 헤어짐으로 향해가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헤어짐은 숨겨져 있던 각자의 이기심과 분노를 꺼내며 진흙탕 싸움으로 향해간다. 맘에도 없는 날카로운 말들을 서로에게 뱉어가며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생채기를 낸다.
찰리는 니콜이 차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퍼붓고 오열한다.
#4 결혼이란 무엇일까
결혼은 그 자체로 무조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도 불행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면 안 되는 부족한 사람들의 결합이자 공존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에 찰리가 부르는 노래에 담긴 이야기가 결혼에 대한 양가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지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살아가자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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