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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movie

툴리(Tully) |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의 이야기

by ContentsCollector 2020. 7. 4.

(스포주의)

 

독박 육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 '툴리(Tully)'.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육아의 고통과 엄마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의 포장도 없이 전쟁 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세 아이의 엄마 마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육아의 세계에서 허덕이고 괴로워하며 산후우울증을 겪게 되는데, 실제로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산후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다. 절대로.

남들과 조금 다른 아들은 아침 등굣길마다 차에 앉아 운전석을 발로 뻥뻥 차며 엄마를 열 받게 한다. 다른 주차장에 차를 대라며 소리를 지른다. 유치원에서는 더 이상 아들을 받아줄 수 없다며 다른 기관으로의 입학을 권유한다. 계획에 없었던 셋째는 밤낮으로 울어대며 엄마를 과로와 수면부족에 몰아넣는다. 엄마의 하루는 매일 아이들을 챙기며 쉴틈 없는 챗바퀴처럼 돌아간다. 지친 몸으로 앉아 유축을 하는 모습은 정말 리얼했다. 진작에 가감 없이 묘사되었어야 할 고된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는 화장을 할 시간도 자기 관리를 할 여유도 없다. 삶이 버겁다. 게다가 남편은 그저 방관자적 모습을 보인다. 아내가 아이를 보고 오는 동안 헤드폰을 끼고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는 모습이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든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오빠는 동생이 지내는 걸 보다 못해 야간 보모를 구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녀가 바로 툴리(Tully)다. 처음엔 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게 익숙지 않아 거절하지만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한계에 다다른 마를로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다. 늦은 밤 지친 마를로를 찾아온 툴리. 그런데 보모라고 하기에 너무 젊은 20대. 어딘가 이상했다. 게다가 오자마자 모든 걸 능숙하게 해내고 마를로의 마음까지 케어해주는 모습은 더 묘했다. 대신 집안 청소도 해주고 아이들을 위한 간식까지 만들어 주고 간 툴리.

어쨌든 마를로는 아주 오랜만에 통잠을 잔다. 운동도 하고 아이들에게 요리도 해주며 일상의 활력을 되찾는다. 마를로는 보모이자 친구 같은 마를로에게 점점 더 의지해갔다. 모든 게 괜찮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간 어떤 일탈의 밤, 툴리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고 마를로는 실망한다. 이때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인상적인데, 20대의 툴리는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린 마를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삶에 지친 30대 마를로는 불안한 젊음을 가진 툴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20대는 꿈만 같죠. 그러다 새벽 쓰레기차처럼 30대가 다가오죠. 그래요. 그러다 그 앙증맞은 작은 엉덩이와 발이 임신할 때마다 반 사이즈씩 커지고 이 자유로운 영혼도 매력이 사라지죠. 그러다 외모도 추해져요."

덜컹하는 대사였다. 완벽한 동감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만한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게 아니라, 마를로가 자신의 30대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마를로는 자유로웠던 20대를 그리워하면서 그 허상을 잡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다 난데없이 영화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마를로는 툴리와 함께 졸면서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눈 뜨니 병원. 의사는 마를로가 과로와 수면부족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야간 보모가 아기를 돌봐주었고 오랜만에 괜찮아 보였던 아내이기에 더욱 믿지 못하고 이 상황에 의아하기만 하다.

병원에서 환자 등록을 하는데 간호사가 남편에게 아내의 결혼 전 성을 묻는데 남편이 대답한다. '툴리 t-u-l-l-y'라고. 마를로가 툴리였던 거다. 20대 시절의 마를로. 남편은 아내에게 말만 듣고 야간 보모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매일 청소하고 요리하고 아기를 돌봤던 건 다름 아닌 마를로 자신이었던 거다. 꿈 많고 젊었고 활기찼던 어린 날의 자신의 환상에게 기대 얼마 남지 않은 한계를 미루고 또 미루어왔던 거다.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났다. 김지영의 이야기는 그녀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배경과 과거의 서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다면, 툴리는 결국은 젊은 날의 자신이었던 허구의 인물을 통해 감정적인 공감을 얻는 것에 집중했다. 육아가 얼마나 현실에서 무거운 짐이 되는지 그 무게와 엄마의 절절한 감정을 열어 보여주었다. 둘의 공통점은 이 처절한 현실에서 한 반짝 떨어져 있는 무책임한 남편의 뒤늦은 반성이다.남편이 반성하고 달라진 후에야 가정의 행복은 회복된다. 함께 요리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할 만큼 힘든 고통을 수반하는 육아는 부부가 함께 나누지 않으면 그 어떤 형태로도 극복해나갈 수 없다. 애초에 툴리는 타인일 수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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