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유기견 입양을 꺼리는 현상을 의미하는 블랙독 증후군. 관심보다는 외면이 익숙한 검은 강아지는 따스한 손길이 오히려 어색하다. 사립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이 바로 그 검은 강아지를 상징한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계약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무시와 차별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블랙독.
이야기는 또 다른 블랙독에서 시작된다.
고하늘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혼자만 터널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갇히게 되는데, 유일하게 하늘을 구하러 간 사람이 바로 기간제 교사였던 김영하였다. 그렇게 학생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선생님은 기간제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처우조차 받지 못하고 진짜 선생님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많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하늘은 어른이 되고 삶의 어떤 연결고리라도 있는 것처럼 기간제 교사가 된다.
#1 또 다른 미생
고하늘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른다.
계약직이라는 점뿐 아니라, 낙하산 아닌 낙하산이 되어 주변의 오해 가득한 시선으로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는 점,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초년생의 모습, 부서 간의 힘겨루기와 얽혀버린 이해관계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는 난처한 입장까지. 배경이 무역회사에서 학교로 옮겨지고 2014년에서 현재로 달라졌을 뿐, 지금 우리 사회의 구조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 안타까운 블랙독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의 캐릭터는 너무도 닮아있다.
학생들 앞에선 모두가 다 같은 선생님이지만 곧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기간제 교사. 주인의식을 가질 수도 행세를 할 수도 없는 애매하고 불편한 상황들 속에서 고하늘은 마음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외롭게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보통 직업으로서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방학도 있고 연금도 보장되는 꿀직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볼수록 만만치 않은 피곤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개학날 첫 수업을 준비하는 고하늘의 모습은 보는게 힘들 정도로 진땀 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2 학교도 조직
학교도 조직이다. 학교라는 조직의 특수성이 이 드라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축소판을 상징하는 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다.
기간제와 정교사 사이에 존재하는 우열의 관계들, 진학부와 3학년 부서에서 각자 해야 할 일들과 충돌하는 상황들은 여느 수직적인 구조의 회사들만큼이나 숨 막히고 갑갑하다. 그 와중에 수업도 준비해야 하고 학부모들 눈치 보며 설명회도 준비해야 한다. 학교 자체의 경쟁력에 신경 쓰며 영업도 해야 한다. 방과 후 수업에 동아리 운영까지 맡아야 하고 그 와중에 기간제 교사들끼리의 경쟁과 시기도 존재한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어느 곳에나 있는 정치싸움 역시 예외는 아니다.
#3 다 똑같은 선생님
장그래에게 그를 응원하고 북돋아주는 오상식 과장이 있었다면, 고하늘에게는 진학부 부장인 박성순(라미란)이 있다. 때로는 냉정하게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하는 진정성 있는 캐릭터. 진학부의 선생님들은 대체적으로 소신 있으면서도 학교에 잘 적응해나가는 유연성을 지닌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고하늘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박성순은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잘 구분해가며 고하늘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는 선배라고 볼 수 있다. 이들과의 케미를 지켜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다 똑같은 선생님이에요."
당연한 말이지만 자꾸만 잊게 되고 틀린 말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상황에 놓인 고하늘에게 잊지 말라는 듯 말해주는 박성순이다.
회를 거듭하며 고하늘은 학교에 적응해나가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서는 강단 있게 밀어붙이기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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